고종이 피아노 즐겼던 그곳서…한여름밤 음악회

23 June 2021

송지원·이한나·김민지 3人
30일 덕수궁 석조전서 공연

"관객 표정·눈빛 볼 수 있어
유럽 살롱 음악회처럼
실내악 연주 최적의 공간"

베토벤·드보르자크·멘델스존
`안경` 등 숨겨진 명곡 연주

 

1910년 덕수궁 석조전에서 열린 고종의 생일 축하연. 이 자리에서 우리나라 최초 피아니스트 김영환(1893~1978)의 피아노 연주가 펼쳐졌다. 고종은 1907년 퇴위한 뒤 서양식 석조건물인 이곳에서 말년을 보냈다.

석조 건물 특유의 기품과 우아함이 느껴지는 이곳에서 펼쳐진 피아노 연주는 고종에게 잠시나마 망국의 현실을 잊게 하는 시간이었을 것이다.

바이올리니스트 송지원·김다미, 비올리스트 이한나·김규리, 첼리스트 김민지 등 활발한 연주 활동을 펼치는 여성 현악 연주자 5인이 오는 30일 덕수궁 석조전 중앙홀에서 한여름밤의 음악회를 펼친다. 18세기 유럽에서 유행했던 신고전주 양식을 표방해 1910년 준공된 석조전 내부는 온통 따뜻한 질감의 하얀색 내장재로 마감돼 있다. 여기에 황금빛 이오니아식 기둥과 벽난로가 품격을 더한다. 야간이면 은은한 조명이 어우러지며 유럽의 아름다운 옛 저택에 앉아 있는 것 같은 착각에 빠져든다. 지난 21일 이곳에서 이번 '덕수궁 석조전 음악회' 음악감독을 맡은 김민지와 송지원, 이한나를 만났다.

"석조전에서 저희 모두 여러 차례 연주회를 해봤는데 층고가 높은 대신 공간은 너무 크지 않아 아늑한 소리가 나요. 실내악을 연주하기 정말 좋은 장소예요. 18~19세기 유럽 살롱 음악회가 딱 이 정도 규모 공간에서 이뤄졌을 거예요. 공간이 연주에 미치는 영향은 꽤 커요. 석조전에서 펼쳐지는 연주를 들으면 시공간을 초월한 감상을 느낄 수 있을 거예요."(김민지)

"연주회장마다 장단점이 있어요. 어떤 곳은 너무 울림이 심해 다소 지저분한 음향이 나기도 하고, 어느 곳은 너무 울림이 작아 연주 효과가 반감되기도 하죠. 석조전은 관객 없이 연주자들끼리만 연주하면 다소 울림이 큰 느낌인데, 관객이 들어서면 딱 적당한 크기의 울림으로 바뀌죠."(이한나)

최근 국내 클래식계에서도 실내악 연주가 늘고 있는 추세지만 적합한 크기의 연주홀은 찾기는 힘들다. 예술의전당 등 주요 극장들이 실내악 전용 공간을 갖고 있지만 규모는 600석 내외로 연주자들 사이에선 "실내악을 제대로 구현하기엔 다소 크다"는 얘기가 많다. 하지만 석조전 중앙홀 면적은 124㎡(약 38평) 규모로 100여 명 관객 앞에서 연주를 펼친다. 다만 이번 음악회는 코로나19 상황을 감안해 스무 명만 받는다. "규모가 큰 연주홀에 서면 뭔가 제 연주를 평가받는 느낌이 들어요. 그런데 석조전은 관객 100여 명 앞에서 연주하게 되는 데다 관객과 연주자들이 같은 높이에서 눈을 맞출 수 있어 편안한 마음으로 연주할 수 있어요."(송지원)

연주자들과 관객이 밀착되다 보니 연주자 입장에선 다소 부담스러운 측면도 없지는 않다.

"기존 연주홀은 객석이 어둡죠. 그런데 석조전은 무척 밝아서 연주 중에도 관객 표정이 하나하나 다 보여요. 엄청나게 집중하는 얼굴의 관객이 저희를 앞뒤·좌우로 둘러싸고 있는 장면을 상상해 보세요(웃음). 그래도 관객들이 행복해하는 표정을 보면서 저희도 즐겁게 연주하죠."(이한나)

"관객 움직임이 다 보이니 부채질을 하거나 다리를 흔드는 모습까지 다 눈에 들어와요. 그러면 순간적으로 악보를 놓치기도 해요."(김민지)

실내악을 연주하면 흔히 바이올린 2대와 비올라, 첼로의 현악4중주를 떠올린다. 하지만 이번 음악회는 다소 생소한 편성의 작품들로 프로그램을 꾸렸다. 베토벤의 '안경'은 비올라와 첼로를 위한 2중주 곡이고, 드보르자크의 '테르체토'는 바이올린 2대와 비올라를 위한 3중주 작품이다. 이날 연주회 대미를 장식할 멘델스존의 현악5중주 제2번은 바이올린 2대, 비올라 2대, 첼로 1대로 편성된다.

 "실내악에는 숨겨진 명곡들이 정말 많아요. 좋은 작품들을 발굴해서 소개시켜 드리고 싶은 마음에서 이번 프로그램을 구성했어요."(김민지)

"안경은 베토벤이 친구와 2중주를 하기 위해 만든 작품이라 유머가 넘치고, 멘델스존 곡은 여름밤에 잘 어울리는 작품이에요. 연주자들이 주고받는 눈빛이 무슨 의미일지 상상하면서 들으면 연주를 더 재미있게 감상할 수 있을 거예요."(송지원)

[매일경제 오수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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